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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양주ㆍ동두천 격동의 총선거 60년사

무소속, 소수당 당선자 다수 배출

2011년 04월 01일 16시 35분 (주)양주/동두천신문사
19대 총선 1년 앞으로

2012년 4월 11일 제 19대 총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1948년 치러진 1대 총선을 시작으로 양주 동두천의 총선거 60년사를 2회에 걸쳐 정리했다.




[제1대 제헌선거]
양주 갑, 을 두 곳에서 실시

해방 이후 1948년 5월 10일 치러진 첫 국회의원 선거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거구별 최다수득표자 1인이 당선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양주군은 갑과 을 2개 지역구로 나눠 실시됐는데, 양주 갑은 의정부읍, 주내면, 회천면, 이담면, 은현면, 광적면, 백석면, 장흥면, 별내면, 남면이 지역구였으며, 양주 을은 남양주 화도면, 와부면, 미금면, 구리면(구리시), 호해면, 진건면, 진접면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양주 갑은 최영태, 신공숙, 유남수, 김덕열, 김형태, 정동호 등 6명의 무소속 후보자들이 출마해 이 중 1만1215표(38.1%)를 얻은 김덕열 후보가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김덕열 국회의원은 1910년 양주 출생으로 일본 주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군정청 관재처 감찰관으로 근무, 양주군 주내면장을 역임했다. 그 후 1950년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양주 을은 김산, 남관연, 안흥근, 곽행서, 신형식, 구중서, 이진수 등 후보 모두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7800표를 얻은 이진수 후보가 당선됐다.



[2대 선거]
사회당 조시원 당선 ‘돌풍’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국회의원 선거는 39개 정당 및 단체와 무소속이 경쟁한 결과 무소속이 국회 정수의 60%인 126명이나 당선됐고, 정당으로는 대한국민당과 민주국민당 소속이 각각 24명이 당선됐다.
양주 갑은 대한국민당 2명, 사회당 1명, 무소속 11명이 출마했으나 5311표를 얻은 사회당 조시원 후보가 당선됐다.

조 의원은 1904년 양주 출생으로 상하이의 대학에서 수학한 뒤 1928년 청년 조직에서 활동을 시작, 베이징과 만주 등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1938년 임시정부 선무단장, 1939년 임시의정원, 1940년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을 지냈고, 광복군 창군에 참가한 뒤 간부로 활동했다.
양주 을 지역은 민주국민당 이진수 후보가 5097표를 얻으며 재선에 성공했다.



[3대 선거]
양주 갑-김종규, 을-강승구 후보 당선

1954년 5월 20일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는 한국전쟁으로 사회가 혼란한 가운데 실시됐다.
양주 갑에 출마한 자유당 김종규, 무소속의 강영훈, 이동근, 김병완, 김용택, 홍종익 등 6명의 후보들 중 1만6424표(39.1%)를 얻은 자유당 김종규 후보가 당선됐다.
양주 을 지역은 자유당 이진수 후보와 무소속 구중서, 강승구 후보가 출마해 1만5897표(56.1%)를 얻은 무소속 강승구 후보가 압승을 거뒀다.



[4대 선거]
양주 갑 강영훈, 을 강성태 당선

1958년 5월 8일 치러진 4대 총선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의원선거법에 관한 여·야 협상위원회를 구성하고 여·야 개정안을 절충해 가까스로 타협된 민의원선거법에 의해 치러졌다.

양주 갑은 자유당 김종규, 민주당 강영훈, 무소속 남승희 후보 가 본선에서 맞붙어 2만275표(37%)를 얻은 민주당 강영훈 후보가 배지를 달았다.
을구는 자유당 강성태, 민주당 강승구, 무소속 이진수, 심극구, 이건용, 조승각 후보가 출마해 1만2667표를 얻은 자유당 강성태 후보가 당선됐다.



[5대 선거]
민주당 강형훈ㆍ강승구 당선

1960년 7월 29일 총선은 4.19혁명 후 선거 부정을 막고 민주 선거를 보장하는데 중점을 두고 개정 선거법에 의해 실시됐다.
양주 갑은 민주당 1명, 자유당 1명, 무소속 10명의 후보가 출마, 치열한 각축전을 펼쳐 1만5963표(30.6)를 얻은 민주당 강영훈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양주 을은 1만6표(25.9)를 얻은 민주당 강승구 후보가 당선됐다.



[6대 선거]
양주, 의정부 선거구 분리… 강승구 재선 ‘성공’

1963년 11월 26일 치러진 6대 국회의원 선거는 한국 선거 사상 처음으로 선거구를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눠 소선거구 다수대표제, 비례대표제를 병용해 실시됐다.

1963년 양주군내 의정부읍이 의정부시로 승격ㆍ분리되면서 양주ㆍ의정부 지역구로 나눠 선거가 치러졌다. 후보는 자유민주당 진병식, 국민의당 김종규, 민주당 신흥균, 민정당 강승구, 추풍회 박찬정, 민주공화당 이진용이 출마해 경합을 벌였다.

선거인명부에 등록된 지역 총 유권자 수는 13만2915명으로, 이 가운데 8만5728명이 투표에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만4175표(33.3)를 얻은 민정당 강승구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7대 선거]
민주공화당 이진용 압승

1967년 6월 8일 치러진 7대 선거는 여당인 민주공화당을 비롯해 신민당ㆍ통한당ㆍ자유당·민주당ㆍ한국독립당 등 총 6개 정당이 국회 다수당 확보를 위해 치열하게 붙었다.
양주군ㆍ의정부시 총선거인 수 15만7427명 중 10만9320명이 투표에 참가해 76.1%의 투표율을 보였다.

선거는 6명의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민주공화당 이진용 후보가 5만4112표(54.8%)를 얻으며 추격전을 펼친 신민당 강승구 후보를 28000표 차로 누르고 압승을 거뒀다.



[8대 선거]
이윤학 4만표 득표 국회 입성 성공… 양주·의정부 유권자 16만

7대 국회의원 선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1971년 5월 25일 치러진 8대 총선은 의원 정수가 제6ㆍ7대 보다 29명 늘어난 204명을 뽑았다.
양주ㆍ의정부 총 유권자 수 16만4516명 중 11만3311명이 투표에 참가했다.

민주공화당 이윤학, 신민당 강승구, 국민당 이진용, 통일사회당 박찬정이 출마해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신민당 국민당의 치열한 접전 끝에 민주공화당 이윤학 후보가 4만4278표를 득표해 당선됐다.



[9대 선거]
중선거구제 도입… 박명근ㆍ이진용 당선

1973년 2월 27일 치러진 9대 선거는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거구별로 다수득표자 2인을 당선인으로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실시됐다. 또 일시 중단된 무소속 출마가 허용됐다.

선거인명부에 등록된 지역 총선거인 수 23만9251명 중 18만8889명이 투표에 참가했다.
후보는 민주공화당 박명근, 신민당 김형광, 민주통일당 황인원, 무소속 박창암, 이진용이 출마해 경쟁을 펼쳤다.
선거 결과 박명근 후보가 8만9465표를 얻으며 1위로 당선됐고, 3만5768(19.2)표를 얻은 이진용 후보가 재당선됐다.



[10대 선거]
박명근 재선 성공, 김형광 2위로 당선

1978년 12월 12일 치러진 10대 선거는 총 선거인수 32만6391명 가운데 24만3284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민주공화당 박명근, 신민당 김형광, 민주통일당, 조정무, 무소속 이진용이 출마해 박명근 후보가 10만1757표를 얻으며 재선에 성공했고, 신민당 김형광 후보가 9만4445표(39.3)를 득표해 2위로 당선됐다. 8,9대 선거에서 내리 당선된 이진용 후보는 낙마했다.



김주성 기자 | 다른기사보기 | kjoos198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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