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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30만년 인류 역사 한눈에… 역사 유적 차곡차곡

기획/동두천 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를 찾아서

2011년 04월 22일 17시 21분 (주)양주/동두천신문사



동두천은 임진강 상류에 위치해 북쪽으로 강물이 흘러 한탄강과 임진강으로 신천이 흐른다. 그 물은 서해로 빠져 나간다. 그래서 다양한 어종이 풍부하며, 주변에 산이 많아 수렵이 용이한 이 지역은 위만 집권기의고조선 이후 많은 고대인이 거주했다.

그러다 보니 동두천은 특이하게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역사유물과 유적을 자연스럽게 갖추게 됐다. 그러나 유구한 세월의 흐름 속에 작금의 마구잡이식 개발과 역사의식 부재로 그 존재의 필요성 또는 가치가 없게 돼 결국 많은 유물과 유적이 이 땅에서 사라졌다.

다만, 꼭 전해져야할 필수적인 내용들만이 설화와 민담의 형식을 빌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며 아득한 옛날이야기로 현재까지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좌측부터) 전 동두천 향토사문화연구소장 김택기, 동두천 시사편찬위원 이영일, 최무장 교수.



누리는 자들의 보물창고 ‘역사'

오늘날 우리 겨레는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내세운다. 그리고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구체적인 겨레 역사는 겨우 2000여 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란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우리의 생각에 따라 뒤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의 생각에 따라 뒤바뀔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며, 우리가 모를 경우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오늘날 우리 겨레가 내세우는 반만년 역사를 과연 진정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설령 반만년의 역사를 내놓을 수 있다 해도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필요하고 유익한 도움을 얻어야한다. 역사의 가치는 바로 그런 데 있다.

역사는 이런 가치를 활용할 때만 단절되지 않으며, 이런 가치를 활용하지 않을 때에는 서서히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게 된다. 참으로 ‘역사는 그것을 누리는 자의 보물창고’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겨레의 옛 역사가 기록으로 남지 못하고 사라진 것도 우리와 우리 선조가 그 역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탓이다.
이제라도 입으로만 반만년 역사를 떠들지 말고 더 이상의 역사를 잃어버리는 처지가 되면 안된다.

우리의 삶의 터전인 동두천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는지 알아보고 미래의 동두천을 어떻게 가꾸어 갈 것인지를 설계하는 자세야 말로 우리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동두천지역은 인류사의 중요성이 대단한 유물ㆍ유적들이 많지만 현재 여러 곳에서 쓸쓸히 잠들어 있다.
그러나 이 유물들을 직접 깨워 세상 밖의 빛을 보게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동두천 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김택기, 최무장, 이영일 위원이다.



동두천 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 창립

역사박물관 건립위원회는 최무장 건국대 사학과 교수(고고학 박사)와 김택기 향토사문화연구소장(전 동두천시의회 의장), 이영일(한국서예문인화연구소장, 소요산전국서예대전 대회장)씨로 구성했다.

최무장 박사와의 인연은 동두천시사편찬위원들의 자문을 위해 동두천을 방문, 김택기 소장이 동두천시 탑동지역 고인돌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인지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부터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최무장 교수와 김택기 소장, 이영일 위원은 2009년 6월 중순부터 동두천 전 지역에 대한 지표조사를 시작했다.
이들은 상봉암동 황희터에서 지표조사를 시작해 안흥동 담안→상패동 관아터를 경유, 송내동 안골→지행동 사당골→생연동 황매동→동두천동 안창말→하봉암동 동막골→불현동→광암동→걸산동의 순서로 실시했다.



동두천서 채집된 유물 풍부

동두천은 기원전 30만년 전부터 인간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으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떤 학술조사나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다.
6.25전쟁 이후 동두천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있지만 역사나 고고학이 고려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로 점점 그 자취들이 사라져 간다.

따라서 더 이상 훼손되기 전 지역의 유물을 찾아 보존하고자 하는 위기감으로 지표조사를 시작한 위원회는 동두천 전 지역에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타제석기 40여점과 신석기시대 이후의 토기편 1만여점을 채집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봉암동 안말-기원전 30만년 전 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타제석기인 석영암제 외날찍개 1점, 양날찍개 1점, 작은도끼 2점, 긁개 1점, 첨두기 3점이 채집됐다.
▲안흥동 담안-기원전 8만5000년 전 중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타제석기 석영암제 양날찍개 3점, 1점의 작은 도끼와 칼, 주먹도끼, 첨두기 등이 발견됐다.

또 3점의 선돌도 나왔다. 선돌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길쭉한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 돌을 어떤 믿음의 대상물이나 특수목적을 가지고 세운 돌기둥을 말한다.
▲상패동 골말-중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타제석기 석영암제 외날찍개 6점과 규암 양날찍개 1점 석연암제 칼 1점, 석편 1점 등이 채집됐다.
▲걸산동-축석묘(돌로 쌓은 무덤)와 기원전 8만5000년 전 타제석기 1점, 석영제, 주먹도끼 등이 발견됐다.

▲송내동-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 2기가 발견됐다. 1기의 고인돌은 상석 길이 260cm, 너비 180cm, 두께 60cm이며 지석의 크기는 너비 140cm, 두께 60cm, 높이 120cm이다.
그 옆의 다른 1기는 상석 길이 140cm, 너비 200cm, 두께 60cm이다.
이 뿐만 아니라 김택기 소장이 기증한 196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동두천시 행정자료와 전 세계의 우표 1만여장도 역사박물관이 건립되면 전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물조사 중 잊지 못할 추억

김택기 소장은 “선돌에 대한 지표조사과정에서 타인의 밭 가운데 묻혀있던 유물을 꺼내보다가 밭 주인이 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서로 연행돼 곤혹을 치른적도 있다”고 입가에 미소를 담으며 당시의 추억을 회상했다.

또 지표조사과정에서 보람되고 특별하게 감동받았던 점은 신석기시대의 붉은색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 철기시대와 고구려시대의 붉은색토기, 백제시대의 회백색토기, 신라시대의 경질회청색토기, 고려시대의 연질회흑색토기,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녹유사기의 발견이다.

특히 걸산동의 축석묘를 비롯해 기원전 6만년 전의 석재 주먹도끼와 칼, 청동기시대의 석재 어망추의 발견은 눈물겨운 감동의 순간이었다.


 ▲선돌 안흥동 370번지 (길이 245㎝ / 너비110㎝ / 두께 40㎝)



국내 유일의 역사박물관 추진

역사박물관은 유물, 기념품, 고문서 등 역사적 자료를 널리 수집ㆍ보존해 조사 연구하고 활동의 최종 결과물이다. 일반에게 전시ㆍ공개하며 학술 연구나 사회 교육에 도움이 되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동두천의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을 연구, 수집, 보존을 위해 하루 빨리 한반도 인류사 연구의 중심 지역인 동두천에 역사박물관 건립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박물관이 건립되면 동두천시의 전통문화와 역사를 잘 보존해 시민들의 문화적 애향심을 고취하는 것 뿐만 아니라 동두천을 찾는 내외국인들에게 지역의 특수한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김택기 소장은 “우리 조사팀이 소장한 자료들 중에는 타 지역 박물관에 없는 자료들이 많다”며 “이는 앞으로 동두천이 한반도의 인류사를 연구할 수 있는 중심기준 지역임을 입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다”고 말했다.
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동두천 역사박물관은 서예전시실과 미군주둔역사 전시실을 포함, 한반도 인류사연구소 등 국내 유일의 박물관을 계획하고 있다.

김 소장에게 건립 추진에 어려운 부분을 묻자 “박물관에 전시할 유물들을 충분히 채집해 소장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동두천시에서 역사에 관심을 갖고 박물관 건립에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보였다.

현재 1만여 점의 유물들이 생연동에 있는 (구)소방서 건물 2층과 3층 바닥 등 열악한 환경에 보존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구)소방서 리모델링 계획이 나오면서 건물을 비워줘야 할 처지에 놓여 동두천의 역사가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해 대책이 시급하다.



김주성 기자 | 다른기사보기 | kjoos198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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