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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공 윤근수 선생 396주기 추모제 봉행

종중, 양주의 문화가치로 향유·발전 기대

2012년 10월 12일 17시 55분 (주)양주/동두천신문사


10월 5일(음 8월 20일) 해평윤문의 열조(烈祖)인 조선시대 선조 때 대제학(大提學) 좌찬성(左贊成) 광국일등공신, 호성이등공신의 해평부원근(海平府院君)이며 시호는 문정공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된 휘 근수공의 396주기 추모제가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양주시 옥정동 독바위 월정사당에서 봉제위원회(위원장 윤광로)가 주관한 이날 추모제에는 윤근수 선생의 후손 50여명과 해평윤씨대종회 윤판구 회장, 지족암종회 윤금영 회장, 백사공종회 윤성진 회장 등 임원다수가 참석했다.

또 향사에는 월정공 문인 조경<趙絅 1586년(선조 19)~1669년(현종10)> 후손인 한양조씨 용주공파종중회 조철원 회장이 참사해 월정공 396주기 추모제의 자리를 더욱 빛냈다.
이날 향사는 초헌관에 첫째 댁의 윤철섭, 아헌관에 둘째 댁의 윤동로, 종헌관에 조철원 회장, 첨작에는 다섯째 댁의 윤화영, 좌집사에는 윤광로 월정종회장, 우집사에는 윤민로가 맡아 경건한 마음으로 집례관 윤복로의 창홀에 따라 근엄하게 향사가 엄수되었다.

양주 옥정동 옹암(독바위)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살게 된 계기로 월정 윤근수 선생은 1589년(선조22년)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성절사(聖節使) 겸 종계변무(宗系辨誣) 주청사(奏請使) 정사(正使)로 명(明)나라에 가서 대명회전(大明會典) 전질(全帙)과 칙서(勅書)를 받아 가지고 돌아오자 품계(品階)를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올리고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임명한 다음 전지(田地)와 집(宅)과 노비를 하사받았다. 당시 월정공의 나이 52세.

직계 후손으로 월정공 장증손 서(?.1627-1689 교화군수), 장현손 성임(聖任.1652-1714 경능참봉), 둘째현손 성화(聖和.1669-1727 군자감직장), 셋째현손 성시(聖時.1672-1730 이조참의)등 자자손손으로 대를 이어 온 이로부터 후손이 번창해 해평윤씨 집성촌을 이루어 양주의 세거지(世居地)가 됐다.

월정생가고택(月汀生家古宅)은 10대손 교선(敎善.1826-1904)이 증개축한 것으로 상량문에 함풍사년갑인(咸豊四年甲寅)이란 연호와 간지를 볼 때 1854(철종 5년)에 지어진 고택으로 400여년 대를 이어온 것으로 대대로 해평윤씨 월정문중의 13대 종손(宗孫) 윤충섭(尹忠燮)이 기거하던 종택으로 조상의 얼과 정신이 깃들어 있는 양반 가문의 주거 건축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월정생가고택(月汀生家古宅)은 경기중북부지방의 전형적인 한옥고택으로서 대문과 안대문을 구비하고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어울려 ㅁ자형의 평면구조를 이루고 있다. 안채는 대청마루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2칸 정도의 안방이 붙어 있고, 왼편에는 2칸의 건넌방이 있다. 마당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있는 창고(광)가 있다.

 ▲월정생가고택


사랑채는 대청이나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비켜난 곳에 바깥쪽 툇마루와 통하게 되어 있으며,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덕담을 나누고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곳으로 사용됐다. 문을 열면 바깥쪽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서 노송과 화계를 잘 구축해 운치가 있다. 이곳은 바깥세상과 집 안을 잇는 대문과는 또 다른 창구였다.

현재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양주시의 건축동향을 감안할 때 전통 주거문화인 158년이란 연륜을 가진 월정생가고택(月汀生家古宅)은 매우 희귀할뿐만 아니라 양주시 역사를 시사하는 중요한 사료가치로 고귀한 문화 자산임에 틀림없다.

현재 양주시(楊州市) 향토문화재(鄕土文化財) 제16호인 불천지위(不遷之位)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 사당(祠堂)과 월정생가고택(月汀生家古宅)은 옥정신도시에 조성되는 역사체험공원과 조화를 이뤄 고유한 향토 역사 문화 유적으로서 보존되고 있다.

월정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인 윤근수(尹根壽:1537~1616)의 시문집으로 올 2월 11일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서 한국 문집의 번역과 월정집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했으며 금명간 한국고전번역원을 통해 출간될 예정이다.
조선 중기의 대제학, 월정공 윤근수(尹根壽).

조선왕조실록에서 이르기를 월정공 윤근수는 ‘사람됨이 청백간솔하고, 문장이 고아하며, 필법이 뛰어나 예원의 종장’이라고 전한다. 저서에 ‘월정집(月汀集)’, ‘월정만필(月汀漫筆)’, ‘송도지(松都志)’, ‘경조창수(京朝唱酬)’, ‘조천록(朝天錄)’, ‘사서토석(四書吐釋)’ 등의 작품이 있으며, 글씨는 윤감정변 묘갈, 윤연령부인 박씨갈, 이판서윤 경묘비 등이 있다.



장현주 기자 | 다른기사보기 | jhj07063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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