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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출신 위인 탐방/조소앙(趙素昻)

현재 양주시 남면 황방리 조소앙 기념공원 조성 중

2015년 06월 05일 17시 56분 (주)양주/동두천신문사
대한민국임시정부 사상적 기틀 잡은 독립운동가

6월은 현충일, 6·25 한국전쟁, 6·29 제2연평해전 등이 모두 일어난 달로서 국가보훈처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아 본지는 양주가 낳은 위인 중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 받은 조소앙에 대해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과 양주문화원 관련 자료를 토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국가 수립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나 국기를 다지는 데 공적이 있는 자에게 수여하는 5계급 훈장으로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그 중 최고 계급이다. 대한민국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운 조소앙의 공적을 높게 산데 따라 최고 건국훈장이 수여된 것이다.

조소앙은 1887년 4월 10일 현재 양주시 남면 황방리(당시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용은이다. 조소앙은 1911년 3월 일본 동경 메이지 대학의 법과에 유학하던 중 중국 상해에서 재망명길에 오른 이승만이 동경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유학생에게 행한 강연으로 인해 반일민족사상과 조국광복의 독립사상을 갖게 됐다.

1913년 조소앙은 중국 북경을 거쳐 상해로 망명해 신규식, 박은식 등과 동제사를 박달학원으로 개조해 혁명 청년들을 훈련시키며 진영사, 황각 등과 신아동제사와 아시아 민족의 반일 단체로서 대동당을 조직했다.

1919년 2월에는 중국 상해에서 신규식의 밀명을 받아 일본 동경으로 파견돼 조선의 유학생들과 접촉해 2·8독립선언의 계기를 조성하면서 유학생들의 독립운동을 지도했고, 4월 10일 3.1 독립운동 이후 서울에서 조선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정도령, 손병희, 부도령 및 내각총리경 이승만으로 내각을 구성할 때 교통무경에 임명됐다.

이후 4월 조소앙은 중국 상하이에서 신규식과 함께 혁명당을 조직해 이사로 취임한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임시헌장과 임시의정원법을 제정했다.

조소앙은 1921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공산당대회 참관 후 중국 북경에 돌아와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만주리 선언’을 발표했으며, 1922년 12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김상옥을 만나 사이토 조선총독을 죽이고 일제 관공서를 파괴함으로써 독립 사상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역설해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투탄하는 거사를 일으키는데 동기를 부여했다.

1929년에는 한국독립당 창당 발기인으로서 김구, 이동녕, 이시영 등과 함께 정치균등, 경제균등, 교육 균등 삼균주의를 창시해 당헌, 당강으로 가결시켰다.
이때 조소앙이 창시한 삼균주의가 한국독립당 당강에 반영됨은 물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본 이념으로 채택됨으로써 이후 대한민국 건국 이념체제의 바탕이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931년 11월 조소앙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정치적 공작을 목적으로 특무대를 조직해 의생단이라 명명하고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공작일체를 김구에게 위임한 후 애국단 명칭으로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를 도왔다.

이후 1942년 3월 조소앙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장으로서 미·영·중·소 4개 연합국에 대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속히 승인해 줌으로써 연합국과 함께 일본을 공격할 수 있음을 천명했다. 또 같은 해 10월 11일에는 중한문화협회를 성립시켜 중한공동전선 강화에 이바지했다.
이어 1943년 6월 임시정부 외교부장 명의로 중국 국민정부 군사위원장 장개석 총통에게 공한을 보내 7월 김구 주석, 김규식 선전부장 등과의 회담을 연결하고, 이 석상에서 한국의 독립지원을 요청한 결과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한국 독립문제가 논의되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1

945년 2월 28일에는 임시정부 외무부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독선전 동의 요구안을 제안해 만장일치로 결의하게 되면서 3월 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연합국회의에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표가 참석할 수 있도록 정식 요청했다.

조소앙은 광복 후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사회당 당수,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하다 6.25 당시 북한에 납치됐고 1958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양주시는 남면 황방리에 본가와 공원, 전시관 등이 들어서는 조소앙 선생 기념공원 사업을 올해 10월 완공을 목표로 추진 중에 있다.



김상현 기자 | 다른기사보기 | shsky381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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