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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고/명절 차례상에 대한 고찰

이서윤(동두천시 보산동/주부)

2019년 09월 03일 13시 35분 동두천연천시사신문
이제 2주 정도 후면 올해 추석(9월 13일)이 찾아온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풍요롭고 즐거운 명절이 되면 좋겠지만 여전히 많은 가정과 주부들은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때로는 불화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 원인은 바로 명절의 아이콘! ‘차례상 차리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차례상 재료들은 명절이면 가격이 오르고 각 재료를 예법에 맞게 손질하는 것도 고단한 일이다.

경북 어느 문중에서는 차례상에 오를 시루떡을 찌기 위해 종부가 떡을 찔 때 화장실도 가지 않고, 맑은 물을 떠다 놓고 빌며 불을 조절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시대가 변해 간소화되거나, 믿는 종교에 따라 치르지 않기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가정에서는 차례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만큼 명절 스트레스는 한해 두 번씩 꼬박꼬박 반복되는 중이다.

어동육서(魚東肉西), 좌포우혜(左脯右醯), 조율이시(棗栗梨枾), 홍동백서(紅東白西)는 흔히 듣는 ‘차례상 차리는 법’이다. 각각 상을 차릴 때 ‘물고기는 동쪽, 고기는 서쪽’,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과일은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는 뜻으로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진설(陳設)이라고 하는 이 차례상 규칙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고려시대 이후 예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주자가례(朱子家禮), 18세기에 이를 조선화한 사례편람(四禮便覽)등 어느 책도 차례 상차림을 규정짓지 않았다. 1577년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도 ‘차례는 그때 나는 식재료로 음식을 해 올리되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설명했을 뿐이다.

또한 ‘차례상차림에 어떤 법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다르고, 가정의 형편에 따라 달라야 한다’고 썼다. 제례와 관련된 논문이나 한국역사정보 시스템, 한국학 중앙 연구원, 국립 중앙박물관, 성균관, 국역사연구원 등에서도 관습으로 굳어진 이 진설의 규칙은 역시나 확인되지 않는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진설 규칙이 ‘소비·과시의 시대를 맞은 새로운 현상’, 1970년대 이후 ‘새로 만들어진 발명된 전통’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시절 다수의 신문·방송에서 추석 차례가 주제로 다뤄지며 몇몇 가문에 내려오는 가례를 안내했고 이것이 표준화·전국화 됐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며, 집집마다 예가 다르니 저마다의 예를 따르면 충분하다는 가가례(家家禮)를 강조한다.

실제 조선 후기 문인인 명재 윤증(파평 윤씨)가문의 차례상은 밥과 탕, 어포와 육포, 제철 과일로 단출하다. 윤증은 후손들에게 ‘제사는 엄정하되 간소하게 하라. 제사상에 떡을 올려 낭비하지 말고, 손이 많이 가는 화려한 유밀과와 기름이 들어가는 전도 올리지 말라’고 일렀다.

이에 더해 ‘훗날 못사는 후손이 나오면 경제적 부담이 될 테니 간단히 하라’고 당부했다. 과거에는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 유과·전은 사치스러운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추석 차례의 근본은 계절마다 새로 나는 곡식이나 곡물, 과일, 생선 같은 것들 즉, 우리 땅에 나는 제철음식, 조상이 좋아했던 음식을 바치는 것이었다고 한다.

몇 해 전 숙환(宿患)으로 내 곁을 떠난 엄마는 제사·차례상 단골손님인 약과, 유과, 생률, 전류를 즐겨 잡숫지 않았다. 반면 폭신한 카스텔라와 달콤한 바나나를 무척 좋아하셨지만 끝내 한 번 더 잡숫지 못한 채 떠나신 게 늘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즐기지 않던 음식이 제사·차례상에 한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조금 못마땅했고 유독 명절 즈음이면 카스텔라와 바나나에 눈길을 빼앗겨왔다.

관심을 갖고 공부 해보니 앞으로는 엄마의 차례상에 생전 좋아하던 음식을 올려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그것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우리 식구들의 진심이고, 엄마와의 추억이 담긴 우리 집만의 가가례(家家禮)로 자리 잡으리라 믿으면서.



동두천연천시사신문 기자 | 다른기사보기 | kioa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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