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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漣江), 임진강(臨津江)의 또 다른 이름인가?

외부기고/이준용 연천문화원장

2019년 09월 03일 13시 36분 동두천연천시사신문

연강은 임진강의 이름(별칭)인가?
최근 들어 연천군에서는 갑자기 연강(漣江)이라는 이름의 평화누리길이나 연강갤러리, 연강나룻길 등 연강이라는 호칭을 부쩍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로 임진강 주변에서 임진강을 의식한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곳에서 사용되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연강은 임진강의 다른 이름인 것일까? 정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연강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어느 때부터 누가 붙인 이름일까? 이에 대해 분석해 보자.

임술년인 조선 영조18년, 서기 1742년 10월 보름날 경기북부지역을 순시 중이던 경기도 관찰사 홍경보(洪景輔)는 당시 최고의 화가인 양천현령 겸재 정선(謙齋 鄭敾), 역시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연천현감 신유한(申維翰)과 함께 뱃놀이를 즐기기로 한다.

셋은 660년 전 북송의 소동파처럼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일대인 삭녕 우화정(羽化亭)에서 웅연(熊淵)까지 약 40리 길을 임진강에 배를 띄우고 뱃놀이를 했다. 그 당시 소동파 따라 하기가 조선 사대부 사이에 한창 유행이었던 때였다.

셋은 이날의 뱃놀이를 화첩(畵帖) 세 벌로 남겨 한 벌씩 나눴다. 정선이 그림을 그리고, 홍경보와 신유한이 글을 쓴 이 화첩 이름은 ‘연강임술첩(漣江壬戌帖)’ 즉 ‘연천의 강을 임술년에 그린 그림과 시가 담긴 책’이라는 뜻이다.

 ▲겸재 정선의 1742년作 ‘우화등선’, ‘연강임술첩’에 실린 그림이다.



당시 67세로 최고 전성기였던 정선은 ‘우화등선(羽化登船 우화정에서 배를 타다)’과 ‘웅연계람(熊淵繫纜 웅연나루에 정박하다)’이라는 그림 두 점을 통해 이날의 뱃놀이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우화정에서 배에 오른 관찰사 일행은 배를 타고 임진강을 따라 웅연으로 이동한다. 웅연에 도착하니 달이 뜨고, 횃불을 든 사람들이 일행을 마중 나온다.
해질녘 하늘은 옅은 먹으로 은근히, 강가의 벼랑은 짙은 먹의 부벽준(斧劈?)으로 대담하게 표현했다.

 ▲겸재 정선의 1742년作 ‘웅연계람’, ‘연강임술첩’에 실린 그림이다.



당시 최고의 화가이던 양천현령(陽川縣令) 겸재 정선이 그린 ‘연강임술첩’에 의해 연강이라는 말이 처음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의 어디에도 임진강을 연강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삼국시대에는 임진강을 호로하(瓠蘆河)라고도 불렸으며 이후 강물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여 징파강(澄波江)이라고도 불린 적은 있으나 고유명사로서의 연강은 그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연천군에서는 연강이라는 말을 관광브랜드로 사용하면서 이를 널리 알려 상품화하는 것은 권장할 수도 있겠지만 임진강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표현이나 연강이 무슨 뜻이냐고 질문이 있을 때 이를 잘못 알리는 것은 상당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동두천연천시사신문 기자 | 다른기사보기 | kioa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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