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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기고) 가을의 단상(斷想)

2019년 10월 29일 14시 46분 동두천연천시사신문

이명수 동두천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장

가을 하늘 햇살에 실려 온 붉은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 가을에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인생은 영원한 도보(徒步)의 여행이라고 장콕크는 갈파했는가보다.

네 영혼이 피로하거든 산으로 가라 했듯이 경기의 소금강 소요산의 단풍은 설악산의 수려함이나 내장산의 단풍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 소요산은 태조 이성계가 별궁을 짓고 심신(心身)을 달래며 거닐던 곳으로 노닐 소(逍)자에 멀 요(遙)자를 써 ‘한가하게 거닐다’라는 소요산의 유래로 전해 오고 있다.

소요산 공주봉 아래 소요 사찰(寺刹)은 조선 초기 장맛비 산사태에 묻혀 그 명맥(命脈)을 자재암(自在庵)이 이어오고 있으며 산자락 곳곳에 역사의 향기가 배어있다. 깊고 아늑한 산사(山寺)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의 변화를 음미하는 것이 좋다. 매년 10월이면 단풍을 배경으로 한 ‘단풍문화제’가 열린다.

소요산은 나에게 깊은 인연과 참선의 오묘한 맛이 감도는 비경의 명산과 명찰(名刹)이라 하겠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산사의 경치는 동양화의 화폭 속을 거니는 감흥을 그대로 전하고 산사는 언제나 많은 색상을 간직해 두었다가 철따라 수채화를 그려낸다.
공자가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모습은 신비스러울 만치 온통 울긋불긋하다.

“청산(靑山)은 어찌하여 만고(萬古)에 푸르며 유수(流水)는 어찌하여 서야(書夜)에 긋지 않고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萬古常靑)하리라”고 읊은 퇴계 이황(李滉)의 시조를 연상하며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흔히 봄-처녀, 가을-남자로 계절을 비유하지만 가을에는 애수(哀愁)를 느끼고 명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 하는 말은 우리에게 판박이 문자와 같다. 무감각하지만 나이 먹은 사람이나 민감한 젊은이나 가을에는 마음이 가라앉고 평소에 쌓였던 생각을 하게 된다.

가을이 풍요로운 계절이라 해서 저절로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가을빛에 물들고 스스로 높고 푸르른 하늘처럼 마음을 정갈하게 다듬어야 한다. 가을을 가을답게 살아가는 일은 가을에 걸맞게 살아가는 몸짓일 것이다.

어둠은 빛으로 풀고 미움은 사랑으로 풀어야 한다. 삶이 비록 힘겨워도 가슴에는 넉넉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심원(心願)한 풍광 속에 자리한 산사를 찾아 때 묻은 영혼을 씻고자 하는 사람들, 거기에는 영적인 안식과 평화가 깃들어 있다.

소요골 맑은 물에 오만과 허욕의 습기를 씻어내는 겸허의 자세로 마음을 비우고 있노라면 자재암에서 은은히 들여오는 독경(讀經) 소리가 신비로운 열반의 세계로 나의 영혼을 부르는 것 같다.

으스스한 바람에 마구 흩날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노라면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든 자신을 들여다본다. 살아온 날의 해가 저물어 가는 일흔두 살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심고 각축을 다투다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면 하루라도 마음을 정결히 하고 자신을 대면(對面)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된다.

어느덧 칠순(七旬)을 넘어 팔순(八旬)으로 가는 길목에 서니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에 우리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아직도 막연하다. 그러나 어디로 갈 것인가는 명백하다. 그래서인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어김없는 변화에도 감회가 새롭고 문득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이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동두천연천시사신문 기자 | 다른기사보기 | kioa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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