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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I am sorry. 이 한마디가 그리 어렵습니까?”

2020년 08월 14일 22시 49분 동두천연천시사신문


우리 주변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들,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이 담긴 작품들을 마주할 때면 잊고 지내던 선조들의 아픔과 상처들에 다시 놀라고 ‘탈(脫)인간급’인 일본의 잔혹함에 어김없이 경악하게 된다.

특히나 ‘위안부’ 피해자를 조명한 작품들이 그렇다. 몇몇 영화 속 대사들은 작품의 완성도나 흥행 결과와는 상관없이 가슴을 후벼 파는 듯 아프다.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다만 황군을 위한 암캐일 뿐이다”〈영화 귀향〉

“나를 내 본모습으로 돌려줘. 당장 열일곱 그때 그 모습으로 돌려줘”〈영화 허스토리〉

“I am sorry. 이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습니까?”〈영화 아이캔스피크〉

이런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아직까지 곪아있는 우리 역사의 비극임을 상기시킨다.

아울러 “강제연행은 없었다”, “일본이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근거는 없다”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부”라며 한 결 같은 뻔뻔함과, 나날이 진화하는 망언들을 내뱉는 저들과의 전쟁이 여전한 현재 진행형임을 다시 일깨운다.

 영화 귀향 스틸 컷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듯 구름보다 하얗고, 꽃보다 예뻤을, 별 대단치 않은 일에도 까르륵 웃는 것이 즐겁고 행복했을 어린 소녀들은 협박·폭력·인신매매·유괴로 위안소에 끌려갔고 이 어마무시한 비극은 소녀들의 삶을 완벽하게 짓밟았다.

문헌·증언에서 매음부, 창기 등으로 지칭된 소녀들은 부산, 일본, 대만을 거쳐 홍콩,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등을 끌려 다니며 참혹하고 처절한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다.

자살을 하거나 목숨 걸고 도망치기도 했지만 잔혹한 일본군은 기어코 다시 잡아와 소녀들을 또 다시 짓밟았다.

 영화 귀향 스틸 컷2


“여기가 지옥이다”〈영화 귀향〉라는 대사처럼 고통만 가득한 지옥에서 그저 버텨냈을 것이다.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생존자 중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이후 ‘위안부’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첫 공개증언 후 26년이 흐른 2017년,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며 매년 8월 14일은 공식적인 국가기념일이 됐고 올해는 세 번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여성가족부는 14일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피해 할머니와 시민단체, 학계전문가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를 개최했다.

정부가 개최하는 세 번째 기념식인 올해 행사는 ‘미래를 위한 기억’을 슬로건으로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미래세대가 그 기억에 응답하겠다’는 의지와 약속을 담아냈다.

아울러 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정리한 디지털 자료저장소 ‘아카이브814’(www.archive814.or.kr)의 개관식도 함께 진행했다. 아카이브814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과 관련된 자료까지 모두 526건의 디지털 기록이 담겨있다.

같은 날 아쉽게도 동두천의 두 번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는 없었다. 지난해에는 여당(더불어민주당) 지역위원회의 첫 주최로 최용덕 시장, 동두천·연천 여당 관계자 등 30여 명이 시민근린공원 내 소녀상 앞에서 피해 할머니들을 기린바 있다.

지난해 현장을 취재한 기자는 ‘모두가 기억해야 할 아픔, 역사적 사실이 담긴 국가기념일에 많은 시민이 동참하지 못한 이유’와 ‘왜 특정정당이 주최하고 해당 정당 관계자들만 모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아울러 위안부 피해자를 기린다는 본래 취지가 정치적 결집이나 다음 선거를 대비한 퍼포먼스로 퇴색되지 않길 바라며 기사를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없이 소녀상만 홀로 외롭게 비를 맞고 있었다.

동두천시청과 여당 지역위원회에 문의하니 “코로나19 확산방지와 집중호우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기 위해 올해 행사는 개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장 인터뷰에 응해준 시민A씨(39세, 여)는 “지금 동두천 평화의 소녀상 위치는 적절하지 않다”며 말문을 열었다.

“의정부 평화의 소녀상은 안중근 의사 동상과 함께 역 광장에 자리 잡았다”면서 “많은 시민들은 물론, 많은 주한미군들이 고국에 돌아가서도 위안부 문제의 정확한 사실을 알리는 외교사절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유동인구가 많은 지행역 광장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두천시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음에도 왜 다른 지자체처럼 기림의 날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이냐”고 되물으면서 “정치와는 상관없이 희망하는 시민 다수가 참여 할 수 있는 기림의 날 행사가 있었으면,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지난 2015년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는 피해 할머니들의 동의 없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며 ‘불가역적’이라 일컫는 합의를 끝냈고, 일본 정부는 전쟁 국가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급급할 뿐 한 마디 사과도 없었다.

합의의 대가로 받은 돈은 10억 엔, 현재 화폐가치로 약 111억2780만 원이다. 준 사람은 치유를 위한 돈이라는데 받을 사람의 상처는 오히려 덧나버렸고, 그렇게 피해 할머니들의 존엄은 단돈 10억 엔과 맞바꿔졌다.

피해 할머니들은 돈 필요 없다고, 진심어린 사과면 용서한다는데 가해자인 일본 정부는 사과 없는 화해를 강요하고 조건이 포함된 타협을 내세우면서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부정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에는 피해 할머니들이 대한민국 후손들에게까지 이용당해왔음이 경기도의 민관합동조사결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거주 시설인 ‘나눔의 집’은 할머니들을 위한 후원금 약 88억 원을 모금했음에도 대부분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으며 의사소통과 거동이 불가능한 중증환자 할머니들에게 “갖다 버린다”, “혼나봐야 한다”면서 정서적으로 학대한 정황까지 발견됐다.

공교롭게도 부실한 운영이 드러난 나눔의 집 책임·관련자들 역시 할머니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는 뒷전이다. 한 마디 사과조차 없는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예상대로 편협한 조사결과”, “그동안의 헌신을 폄하·훼손하지 말라”면서 잘못의 인정 대신 이해타산적 주장만 반복한다.

이렇게 나이 90을 훌쩍 넘긴 넘은 피해 할머니들은 생의 가장 찬란해야 했을 시절에도, 생의 끝자락에 다다르는 시기에도 몸과 마음에 날카로운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마주한 소녀상의 눈가에 살짝 고여 있는 빗물은 마치 한껏 눈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고, 꼭 움켜쥔 두 손은 헤지고 다친 마음을 감추려는 듯 보였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단순한 바보로 그치지만, 진리를 알면서도 그것을 부정하는 일은 범죄”라고 했다.

피해 할머니들 대신 여전히 철저·집요하게 뻔뻔한 일본 정부와 할머니들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긴 가해자들의 ‘범죄’에 사과를 받아내는 것은 우리의 숙제다.

아울러 지옥 같은 삶을 견뎌낸 피해 할머니들의 슬픔과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는 것 역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과제다.

묻으려고 발악할수록 드러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요, 역사의 흐름인 만큼 분명 언젠가는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진정한 의미의 치유가 결실을 맺을 것이다.

부디 그때까지 피해 할머니들이 감내한 고통과 피눈물을 쏟아내며 외친 진심이 오래오래 잊히지 않기를, 후대의 거짓·편견·오해로 그 마음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며 내년에는 많은 시민의 동참과 초당적 참여가 이뤄지는 ‘동두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가 개최되길 소망해 본다.

끝으로 혹시나 일본정부와 나눔의 집 책임·관련자들이 모를까봐 덧붙인다. 사과의 원칙은 Content(내용), Attitude(태도), Timing 타이밍인 ‘CAT’로 요약된다.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성 있게 빨리 사과해야 한다는 얘기다. 사과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얼마 안 남았을지 모른다.



정호영 기자 | 다른기사보기 | ultra04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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