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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진로체험지원센터의 활성화를 바라며

유평숙 국방부 병영생활상담관

2022년 01월 11일 09시 20분 동두천연천시사신문

*우리나라 청소년법에 의하면 “청소년”이란 만 9세부터 만 24세까지다.

초기 청소년들(초등학생)과 공부방을 시작했던 그때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이니 분명 성인이었는데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청소년들과 같이 성장해서 비로소 어른이 되었고 지금도 더 큰 어른으로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다.

결혼 전 나는 잠깐 화장품회사에서 근무했었고 우리나라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한국 민속촌에서 근무했으며, 코로나 19에 이어 오미크론으로 꼬박 2년을 해외여행이 통제되기 전까지는 외국 여행이 자유로워진 시대의 요즘 청소년들은 짐작도 할 수 없겠지만 그 시절에는 외국인이나 소수의 내국인만 출입할 수 있는 ‘면세점’에서도 근무했었다.

이후, 결혼과 임신으로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여 전업주부로 3년여를 지내던 중 우연찮게 다시 직업을 가지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재택근무가 가능한 ‘공부방’이었다.

살림과 육아에 지장이 없으면서도 소득이 보장되는 재택근무의 장점으로 제법 오랫동안 공부방을 운영하다가 또다시 생각지도 않게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만학이었기에 학비는 스스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지역의 은행 직원 식당에서 조리원으로 근무했던 경험도 있다.

학습과 직업 수행을 병행하면서 양쪽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황에 따라 때마다 전직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의 직업을 나열하자면, 비상근직업으로 지역아동센터에서 아동복지교사, 다문화지원센터에서 결혼이주민 여성 대상 가정 방문 지도교사, 교육지원청의 학습클리닉센터 학습상담사 등이 있다.

이상의 여러 직업을 수행하면서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 미래를 위해 비로소 나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진로를 위해 대학원 진학해서 교육지원청 위 센터 전문상담사, 사회복지기관 사회복지사 등 또다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대학원 졸업 후, 비로소 전공을 살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사에 이어 현재 국방부 병영생활상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대학원 졸업 직전 3개월 동안 친구가 운영하는 노인요양 시설 보호사로도 근무했었으니 참으로 많은 직업 세계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족을 달자면, 사회복지사도 기관별 업무 내용이 달라서 어린이 대상, 노인 대상, 부랑아 대상 등등으로 세분화 돼 있으니 이 또한, 직업을 언급할 때 의미있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상의 내 직업 경험을 나열하고 있자니 어쩌면 변덕 많고 진중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 직업 만족도를 생각하면 지금의 직업을 위해서 필요한 경험이었을 거란 생각이니 변덕, 진중하지 못함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늦기는 했지만 여러 직업을 수행해내면서 스스로 진로를 선택했으며 최종 선택한 현재의 직업인 ‘병영생활전문상담관’에 매우 만족한다는 것이다.

오래전, 초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하던 때 내게 자녀들을 보내던 학부형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들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살기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현재보다 나은 미래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직업보다는 자녀들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기 바랬을 것이고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학부모이기도 했으니 그들의 생각과 같았다.

그러나 그때는 청소년의 진로지도를 그저 교수자로서 성실하게 공부만 잘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대학원 졸업 후, 관내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의 상담사로 근무하면서 진로지도는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이고 시급한 교육이라는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회가 되었다.

청소년의 미래 준비를 위한 진로교육을 위해 교육부에서는 2015년부터 자유학기제를 시행했는데 마침, 내가 입사하게 된 2016년 그해 가을부터 동두천에도 도입되어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진로체험지원센터를 수탁, 운영하게 되었고 실질적인 업무를 내가 맡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자유학기제는 곧 자유학년제로 확대, 시행되었다. 늦은 나이에 상담을 전공한 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진로사업에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청소년 상담의 결론은 ‘교육’과 ‘진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나의 직업 경험에 더하여 인적 네트를 가지고 있었기에 실질적인 진로지도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

작은 도시였음에도 지역 교육청과 연계하여 진로체험처 발굴과 함께 진로지도교사 지원단, 전국진로체험센터 워크숍에 참석해서 자랑할 만한 백여 명에 이르는 학부모지원단 등을 구성해 관내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진로지도를 활발하게 운영해 나갔다.

이는 열악한 지역의 청소년 교육환경에 갈증을 가지고 있던 청소년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학부모들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진로체험지원센터를 자율적으로 운영하기에는 담당자로서 한계가 있었고 관리·감독하는 지자체의 몰이해,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로 진로체험지원센터 운영이 답보 중일 때, 급기야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를 떠나게 되었다.

우리 동두천진로체험지원센터와 한발 앞서기는 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서울의 성북진로체험지원센터와 파주진로체험지원센터가 나날이 발전하며 지역 청소년들의 행복한 미래 설계를 위해 운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지역 청소년들을 생각할 때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이제 바야흐로 선거에 즈음해서, 후보자들의 공약에 어르신을 위한 정책, 영, 유아 정책, 일자리 창출 정책에 더하여 무엇보다도 지역 청소년들의 미래를 위한 진로체험지원센터 활성화 정책도 있기를 기대한다.



동두천연천시사신문 기자 | 다른기사보기 | kioa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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